셰프인더키친 <오뗄두스> 정홍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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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인더키친 <오뗄두스> 정홍연 셰프
  • 관리자
  • 승인 2013.07.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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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디저트카페,
여기가 거기예요
<오뗄두스> 정홍연 셰프

‘서래마을 그 가게’로 알려진 <오뗄두스>. 맛집 많다는 서래마을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골목에 자리잡았지만 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오뗄두스>의 수장 정홍연 셰프는 일본동경제과학교에서 수학한 뒤 일본에서 활동했던 제과명장이다.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떠났던 일본 유학길에서 제과 명장으로 거듭난 정 셰프가 들려주는 맛있고 예쁘고 건강하기까지 한 디저트로 행복해지는 법.
글 김민정 부장 사진 박세웅 팀장

제과계의 아티스트
그 어렵다는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마쳤을 뿐 아니라 제과가 발달했다는 일본의 베이커리 부분에서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진 정홍연 셰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특급호텔인 일본 리가 로열 호텔 동경 제과장 자리에 올랐고, 일본 베이커리 부문 각종 대회의 우승을 휩쓴 전력도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이력도 있다는 전설의 셰프지만 정작 본인은 심드렁하다. “아, 기네스북. 중요한 건 아니에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케이크라는 기록이었죠. 일본에서 일할 때 협업의 결과물인 정도예요.” 실상은 말처럼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그가 만든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케이크는 다이아몬드로 장식, 세계에서 가장 비싼 케이크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이다. 그뿐 아니라 2001년 ‘Japan Cake
Show’에서 초콜릿 대형공예 부문 1위에 당당히 오르고 세계적인 제과 경연 대회인 프랑스 ‘Coupe de Monde’ 한국 대표로 2번이나 출전했다. 일본 유명 프로그램인 동경TV社의 ‘TV 챔피언’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 부문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제과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의 반열에 올랐다. 90년 전통의 리가로열호텔의 제과장으로 재직 당시 초콜릿의 마법사, 장인, 아티스트 등으로 불리며 존경받았다. 일본 왕족들, 유명 연예인, 기업 CEO들이 그를 찾는
단골고객이었다.

슈크림 하나가 이끈 제과 인생
‘동경제과학교 졸업생’이라는 타이틀도 그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저 직업학교’라면서 1969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가 있고, 1년에 100여 명씩 졸업할 정도로 출신학교생이 많아서 이름은 잘 알려졌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얘기한다. 정작 그 자신은 제과 공부를 하려고 일본행을 결심한것이 아니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둘 상황이 됐고, 뭔가 새로운 계기를 찾고 싶었는데 때마침 ‘일본 가면 학비를 벌면서 공부할 수 있다더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 말을 믿고 경영학을 공부할 결심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듣던 것 이상으로 어렵고 고된 나날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지처럼 살았다’. 동경제과학교 입학도 생각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사장님이 사준 100엔짜리 슈크림이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본 사장이 “일본에서 제과를 배우는 게 어떤가”라고 공부를 권했다. 어렵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입학
전까지 한번도 과자나 빵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제과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워 ‘나랑 안 맞는구나’라는 생각마저 했다. 간신히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서 55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도넛을 튀겨냈다.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작업환경과 노동 시장이 너무나 열악했다. 허리를 다쳐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바로 쫓겨난 것. 정 셰프는 이때 다시 공부할 결심을 하고 일본으로 또 한번 건너갔다. 호텔 뷔페 식당의 설거지 담당으로 일하던 그를 지켜보던 총요리장이 그의 이력을 보고는 제과쪽으로 보냈고, 이후 제과 파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호텔대표로 각종 경연에서 입상한다. 일본 제과의 전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간다
일본에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데는 뜻이 있다. 정 셰프는 한국과 일본에서 겪은 노동 환경을 개선할 방법, 또한 맛있고 멋진 디저트를 전파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실천할 때를 찾은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노동 조건과 작업 환경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특히 도제 시스템이 일하는 사람을 더욱 버티기 어렵게 만들었어요.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라’하는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시작은 <오뗄두스>부터. 대부분의 제과점은 연중무휴지만 <오뗄두스>는 매주 월요일이 휴무일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휴식이 있어야 건강하고 맛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작은 매장으로 시작했지만 언젠가는 이름처럼 호텔도 경영하고 레스토랑도 낼 생각이다. 사람들은 “왜 16.5㎡(5평)도 안 되는 작은 가게를 하냐”, “왜 홈베이커리를 하냐”고 묻지만 정 셰프는 본인의 눈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매장에서 성공한다면 더 이상 규모의 매출을 따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매출이 얼마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이익이 남았느냐, 여기서 <오뗄두스>처럼 작은 매장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작게 운영하기 때문에 어렵게 소문듣고 찾
아온 고객들에게 더욱 혜택이 가도록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입맛을 끌어올리고, 고객의 수준도 높이고, 당장은 힘들지만 궤도에 오르면 가격 역시 사회적인 수준으로 맞출 수 있게. 쉽지 않은 노력이지만 정 셰프는 길게 보고 오래 간다는 생각이다. 계획했던 10년의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런 디저트 본 적 있나요
<오뗄두스>의 디저트는 싸지 않지만, 고객들 중 아무도 따지는 사람이 없다. 좋은 재료로 소량 생산하므로 어쩔 수 없지만 지금보다 더욱 대중적인 가격으로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또한 정 셰프의 목표다.
“저희도 좋은 재료를 사용합니다만 그건 당연한 거라고 봐요. 유기농을 강조하는 곳들도 많은데 좋은 맛을 내자면 필수입니다. 장점이라고 내세울 정도는 아니죠. 요즘 많이 들리는 리얼초코니 동물성생크림이니 하는 말도 제과계에서는 쓰지 않아요. 좋은 재료로 맛을 내는데 동물성이니 식물성이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가 먹고 싶어하는 맛난 디저트를 고객에게 판매한다”는 것이 모토인<오뗄두스>의 대표 제품은 마카롱이다.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마카롱은 노랑색의 패션후르츠, 주황색의 캬라멜, 보라색의 커시스 등의 고운 빛깔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부드럽고 강하지 않은 단맛이 입안에서 녹아내릴 때의 황홀함이란. <오뗄두스>에 와서 마카롱만 맛본다면 큰걸 놓치는 셈이다. 이외에도 파운드 케익, 롤케익, 슈, 초콜릿, 수제 잼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롤케이크라고 속단하면 곤란하다. 촉촉하고 부드럽다못해 풍요로운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어렵게 수입한 메이플슈가로 향과 단맛을 내기 때문에 한번 맛보면 다른 곳의 롤케이크를 먹을 수가 없다. 에클레어 역시 <오뗄두스>의 매력포인트. 고운 핑크빛으로 감싼 속의 진한 커스터드크림은 먹으면서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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