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회 명장의 화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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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회 명장의 화과자
  • 관리자
  • 승인 2011.08.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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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창조하다


<박찬회화과자> 박찬회 명장의 화과자


명절이 되면 귀하신 손님들이 유난히 떠오른다.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고마운 분들께 다른 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진다. 이때 귀하고 고급스럽우면서도 아주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로 낙점되는 것이 바로 화과자다.

명절 또는 특별한 날 손님을 찾아 뵙고 싶을 때 나와 상대를 가장 빛나게 하는 선물, 화과자.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섬세하고 세밀한 손길이 안팎으로 닿아 야물어진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이 화과자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명장이 된 박찬회 명장을 만났다.

글 김민정 부장    사진 박문영 실장

 

흔한 성공스토리입니다

그 시절 제과의 길로 들어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고 하지만 박찬회 명장도 계기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13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많은 형제 자매를 돌봐야 했다. 더욱이 철공소에서 일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까지 당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하루 보내던 열일곱살 때 그는 빵집의 고장난 전기배선을 수리하는 일을 해주고 버터빵을 대접받게 됐다. ‘이런 빵을 평생 먹을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구나’. 이것이 그가 제과의 길로 들어서는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박찬회 명장은 곧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뉴욕제과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예쁘고 화려한 제과점이지만 뒤편의 주방은 결코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편하지도 않은 법. 그는 선배들의 온갖 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제과점 영업이 끝나면 남들 자는 시간에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연습을 했다.

이런 고단한 생활이 7년째 될 때 선배들을 제치고 국내 최초 설립된 제과학교에 입학해 전문기술을 배우는 기회를 얻게 됐다. 하늘은 이렇게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제과 최초의 명장이 되다

이후 그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1970년대 최고의 제과점인 명보제과에 아파트 한 채를 계약금으로 받으며 스카웃되어 연일 화제를 뿌리며 최고의 케이크를 만들어냈다. 극장 아래층에 있던 제과점이라 상영되던 영화 속 캐릭터를 이용한 케이크는 대중들의 열광과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그렇게 안주할 수도 있던 박 명장이었지만 십년 근속을 눈앞에 두고 또 다른 결심을 하게 된다. ‘뭔가 이 이상의 배움이 필요하다!’

한계를 느끼고 배움을 갈구하던 그에게 옛 스승 김충복 선생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도 빵은 단순히 먹을거리로만 취급받던 분위기였지만 김충복 선생은 시대를 한발 앞서나가고 있었다. 김충복 선생은 제과도 작품으로 보고 하나를 만들어도 심혈을 기울였다.

박찬회 명장은 그러한 스승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게 됐다. 그러면서 서울국제빵과자전, 프랑스 세계제빵경연대회 등 국내외 유명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업계에서 명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리고 2000년 10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제과 분야의 명장으로 선정된다.

“명장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제가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 처음에 뭔지도 몰랐고 다른 친구가 명장 타이틀에 도전해보겠다고 해서 추천서를 써줬어요. 그 얘기를 전해들은 후배가 아니 선배님이 아니면 누가 명장이시냐고 자기가 추천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결국 제가 명장으로 선정된 이후 아직까지 십여년 동안에 열명이 안 나왔습니다. 영광된 자리네요.”


박찬회화과자가 나오기까지

박찬회 명장이 화과자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제과업계에 들어선지 30년이 넘어서다. 1995년 자신의 제과점을 성남에 오픈한 박 명장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빵을 만들고 싶어 화과자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다.

박찬회 명장의 화과자 스토리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인천시와 손잡고 특산물인 속노랑고구마와 강화인삼을 활용한 제과제품 '해노랑'을 시 브랜드식품으로 출시했다. 또한 얼마 전에는 롯데제과와 함께 연구한 결과인 프리미엄급 양갱 ‘박찬회연양갱’도 선보였다. 그만의 노하우와 롯데의 생산기술이 결합된 제품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화과자 개발에 끊임없는 연구를 기울이고 있다.

박찬회 명장은 “제게 제과 명장으로서 철학을 물어오기도 하지만 별 것 없습니다. 제과는 사명감으로 하는 겁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뜨거운 불과 씨름하는 부지런함과 책임감. 그것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자신도 30여년 그렇게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의 화과자 인생에 은퇴란 없다. 


박찬회화과자를 즐기는 법

화과자(일본어: 和菓子 (わがし) 와가시[*])는 일본의 전통 과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과자는 찹쌀, 앙금, 설탕, 한천 등 깨끗하고 순수한 자연원료로 만드는 우리의 전통과자라는 주장도 있다. 궁중의 제례 때 보관이 어려운 과일을 표현하기 위해 쌀을 갈아 과일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화과자는 일본 나라 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당과자가 일본 무로마치 시대(14~16세기 중엽)말기에 건너간 남만과자가 일본식으로 동화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화과자는 첫 맛은 눈으로, 끝 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각적 즐거움도 추구하여 모양이 화려한 것이 많다.

박찬회 명장은 이 화과자를 만들기 위해 가장 최고의 재료를 엄선해 사용한다. 한천도 밀양까지 직접 가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최상급으로 구해오는 열성을 보이기 때문에 ‘박찬회화과자’의 맛이 보장이 되어있는 것이다.

박찬회 명장은 “이 화과자를 맛있게 먹으려면  얇게 썰어서 차와 함께 먹는 것이 격에 맞습니다. 한입에 먹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계신데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먹으면 오히려 제맛도 풍취도 즐길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준다. 눈으로 먼저 즐기고, 혀로 느껴라.



*월간 <창업&프랜차이즈> 2011년 8월호 [식재료대백과사전-장인의 식재]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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