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네팔식 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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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네팔식 커리
  • 조주연 기자
  • 승인 2022.12.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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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티풀 레스토랑> 가네쉬 리잘 대표

2007년 <칸티풀 레스토랑>을 오픈한 뒤 현재 강남, 화성 등 총 4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가네쉬 리잘 대표.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본점 외 추가로 오픈한 3개의 <칸티풀 레스토랑>을 멀리서도 찾아오는 커리 맛집, 탄두리 맛집으로 만들었다.

칸티풀 레스토랑 가네쉬 리잘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칸티풀 레스토랑 가네쉬 리잘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국내에는 인도식 커리를 대표로 하는 레스토랑이 적지 않다.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곳은 꾸준이 늘고 있지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한국에서 <칸티풀 레스토랑>을 창업한 것은 물론 추가로 3개의 점포까지 오픈할 정도의 저력을 가진 15년차 창업인 네팔인 가네쉬 리잘 대표는 그래서 더 대단하다.  

 


2007년에 오픈한 장수 점포
네팔인인 가네쉬 리잘 대표는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면서도 한국에서 네팔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싶었던 그는 네팔로 돌아가 음식점을 운영하고 레시피를 만들어가며 경험을 쌓았다.

네팔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2007년 안산에서 커리 전문점 <칸티풀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그가 수많은 지역 중에 안산에 점포를 오픈한 이유는 안산에 네팔인을 비롯해 외국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안산을 대표하는 다문화거리에서 일한다면 현지 맛과 분위기 때문에 현지인과 한국인 모두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처음 오픈하고 몇 년 동안은 네팔 및 인근 나라의 사람들이 고향의 맛을 찾기 위해, 현재는 이국적인 맛을 위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으면서도 네팔 본연의 맛을 가진 덕분에 <칸티풀 레스토랑>은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칸티풀 레스토랑 가네쉬 리잘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칸티풀 레스토랑 가네쉬 리잘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네팔 현지의 맛을 그대로
<칸티풀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은 70%가 한국인일 정도로 맛으로 소문이 났는데, 일년에 한두 번씩 멀리서 연례행사로 오는 가족들도 있을 정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바로 <칸티풀 레스토랑>의 맛 덕분이다. 가네쉬 리잘 대표는 네팔 음식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공기밥 대신 나오는 ‘밥’을 네팔 현지쌀로 짓는 것이다.

네팔쌀은 한국쌀과는 모양도 맛도 전혀 다른 데다가 한국쌀보다 몇 배나 비싸지만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한 손님은 아들이 다른 곳은 맛이 없다고 꼭 저희 점포를 가자고 주장한다고 해요. 그 손님의 집은 일산이라서 안산에서는 꽤 멀지만,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가는 모습을 보면 몹시 뿌듯합니다.”

항상 맛을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출이 상당했고, 그는 그 마음을 지역 사회에 갚으려고 노력했다. 첫 점포가 있어 애정이 큰 안산시의 다문화거리 자치위원회에서는 위원장으로 여러 차례 일했으며, 어른신들을 모시고 무료로 식사 대접도 하는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안산시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예정이다.

 


‘구급차 선물’이라는 꿈을 위해
팬데믹 기간은 가네쉬 리잘 대표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큰 도움이 되었고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여러 지점을 오픈하면서 한국인과도 일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많은 도움을 얻었고, 돈을 많이 벌어도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네팔과 달라 좋았다.

그가 약 15년동안 한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일도 사람도 펜데믹도 아닌 바로 비자였다. “비자를 재발급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갈 때마다 다른 비자를 받아요. 같은 식당에서 같이 주방 일을 하는데도 한 명은 1년 반, 한 명은 6개월을 받을 때면 괴롭습니다. 이 부분이 빨리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의 꿈은 고향에 구급차를 한 대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의 고향은 시골이라 구급차가 없어 위급한 상황에 빠르게 병원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일해서 ‘구급차 선물’이라는 꿈을 알리며 네팔의 음식을 오랫동안 꾸준히 알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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